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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Original Project from T Friends Nov. Mission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

의사결정과 선택

70% 이상의 확신이 들면 실행하라. 우리는 보통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일 수록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최소 90% 이상의 확신이 드는 상황을 만들려 하지만, 실제로 90% 이상으로 여러 조건이 맞고 확신이 드는 경우는 극히 적다. 따라서 어느 정도 확신이 들면 우선 실행에 옮길 필요도 있다. 잘못되었으면 다시 고치면 되니 말이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하지 말기!
(비즈니스 측면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 이 말은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빠르게 프로덕트를 출시하는 Lean UX 방식이나 빠르게 출시한 뒤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Agile UX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인지적 유연성 (cognitivecognitive flexibilityflexibility) :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 나이가 들고 자신의 직관과 직감이 발달했다고 생각하게 되며 인지적 유연성, 즉 유연한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
본인을 의사결정권자의 위치에 올려다 준 직관과 직감으로 인해 되려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늘 한 발짝 물러나서 볼 것.

나만의 지도

정재승 교수님께서 터키의 한 도시에 강연을 갔는데, 정확한 장소를 전달받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연 장소를 찾기 위해 일산 정도 크기의 도시를 택시를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결국 강연장을 못 찾아 불참하였다. 하지만 이 경험 덕분에 그 도시의 지리를 훤히 알게 되어, 남은 기간 동안 여행을 잘 즐기셨다고 한다.
우리도 늘 삶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둘러 쌓인 채 살아간다. 학교와 기성 사회는 우리에게 길을 잃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지도이고, 이는 우리 스스로 그려 나가야 한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어디에 가서 누구와 함께 일할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10년 후 지도는 어떤 모습일지, 나는 누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길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서도 쉽지 않다. 적극적으로 방황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주어진 것, 적극적인 방황을 마치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렇기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양하고 깊은 방황을 해 보고 싶다.

판단 기준

인간의 선택에 어떤 것들이 관여하는가는 전 시대에 걸친 학자들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합리적인 의사결정자라는 가설이 유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판단 기준은 아니다.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과거의 경험, 주의 집중, 편견과 선입견, 도덕과 윤리 등 많은 요소를 두루 고려하고 판단하며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 나 역시 인간이 내리는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합리적이라는 개념 또한 불완전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는 살짝 다른 내용이지만, 내 행동의 판단 기준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요 근래 몇 달 간 내 머릿속을 잠식한 생각이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며칠 전 결론을 내리는 데에 성공했다. 타인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 타인의 경험에 나의 무언가를 더하여 그 경험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살면서 내려온 결정들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어서 꽤 기뻤던 기억이 있다.
정재승 교수님은 어릴 적부터 이 우주가 어떻게 탄생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즉 '철학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평생 탐구하는 삶을 꿈 꿔 오셨다고 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천체물리학을 전공하셨으나 답이 맞는지 틀린지조차 알 수 없는 학문의 특성상 큰 회의감을 느끼고, 복잡계 과학을 접하게 되며 이러한 우주를 우리는 뇌를 통해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묻는 '철학의 인식론적 질문'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잘 정제된 언어로 표현 가능하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UX DAYS SEOUL 2019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다뤄졌었다.

결정장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그중 의미있는 정보가 무엇인지는 알기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이게 썩 쾌적한 경험은 아니다. 대표적인 실험이 과일잼 판매 부스를 열어 한 곳에서는 6종류의 잼을, 한 곳에서는 24종류의 잼을 판매한 것인데 24종류의 잼을 판매한 곳이 사람은 더 북적북적했지만, 만족도와 재구매율이 높았던 곳은 6종류의 잼을 판매한 곳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심리학 이론은 5 Essential Laws for UX Designers 中 Hick's Law 에서도 언급된다.
뇌와 관련된 상식을 하나 공유하자면,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은 전두엽이라고 한다. 미국의 철도 노동자가 폭발로 인하여 쇠막대가 전두엽을 관통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후로 의사 결정과 감정의 절제 등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 평소 의사결정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원칙인데, 바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좋은 전략이 될 것인데, 내일 혹은 한 달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일들에 집중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고, 선택의 무게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또 내가 선택하고 행하는 것들의 진정성과 절박함도 더 커질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17살 때 읽은 글귀 '당신이 매일의 삶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대부분 옳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티브 잡스는 그 이후로 33년 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만약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이 일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내 대답이 '아니오'인 날이 이어지면 무언가 바꿔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욕망과 결핍 Pt.Ⅰ

결핍은 인간의 욕망을 일으키고, 이는 곧 최고의 동기가 된다. 내가 영화에서 봤는지 아티클을 읽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면접장에서 지원자의 결핍을 묻는 CEO도 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만큼 결핍은 우리의 성장, 때로는 성취와 성숙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 책에서 아주 흥미로운 예시를 제시하였는데, 바로 마감효과 ( deadlinedeadline effecteffect ) 이다. 작년에 유행했던 사슴 공부법과 유사한 맥락인데, 시간의 결핍이 촉진제가 되어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마감효과보다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집중 배당금 ( focusfocus dividenddividend ) 이라는 개념도 함께 소개한다. 우리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집중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핍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관련된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밥을 주지 않고 실험에 참여하면 유독 음식과 관련된 실험에서 평소보다 더 높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또한 장애물이나 방해물이 생기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결핍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더욱 강력한 욕망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애랑 못 만나!"라고 말하면 사랑이 더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10년 이상 사귀면 그땐 결혼해도 좋다."라고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10년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사랑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욕망과 결핍 Pt.Ⅱ

오늘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회, 그리고 교육 시스템의 씁쓸한 현실과 나의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교란 뭘 하는 곳일까요? 공부라는 게 너무 즐거워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평생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배출하는 곳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학교들은 '졸업하면 이런 공부 다시는 안 할 거야!'라고 외치는 졸업생들을 세상에 내보내죠. 지금의 교육은 미적분을 더이상 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느끼는 어른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요점은 이 사회의 시스템이 우리가 유년시절에 결핍을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 부족함을 느껴보기도 전에 이미 각종 학원의 형태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그런 삶을 보내왔던 것 같다. 다행히도(?) 현재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의 대부분은 대학생이 된 이후 결핍에서 시작된다. 2015년 겨울, 오랫동안 멈춰왔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었었다. 그때 다시 시작한 클래식 피아노를 지금까지도 계속 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정규 교육과정에 대한 결핍에 의해 포토샵과 일러스트, 그리고 UX/UI 디자인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작다보니 사수에 대한 결핍도 늘 존재한다. 이는 내가 늘 저명한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의 컨퍼런스를 찾아 듣고, 아티클을 찾아 읽게 하는 엄청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직 마인드셋에 대해 논하기엔 부족함이 많으나, 결핍을 인지했을 때 어딘가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기보단 그 에너지를 결핍의 해소와 삶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욕망과 결핍 Pt.Ⅲ

Part Ⅰ과 Ⅱ에서는 결핍이 삶을 어떤 식으로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결핍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원래 결핍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부정적인 기운이 더 강하다. 그것은 아마도 결핍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는 경험을 다들 한 번씩 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결핍이 발생하는 부분이 원초적인 욕구에 관한 것이라면, 일상을 더욱 쉽게 잠식당하기 쉬울 것이다.
결핍된 것에 너무 많은 생각을 집중하는, 온통 거기에만 뇌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결핍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터널 비전'을 갖게 만드니까요.
일례로, 미국의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교통사고로 인해 많이들 사망한다고 한다. 화재를 진압해야한다는 생각에 온통 신경을 빼앗겨 안전벨트를 매는 데에 신경을 못 쓰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핍에 관한 챕터는 교수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끝이 난다.
여러분에게 결핍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들이 결핍되었습니까? 그 결핍이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내 삶에서 결핍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세요. '나는 어린 시절 무엇이 부족했나. 진짜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 보세요. 여러분에게는 인생의 결핍과 대면할 용기가 있습니까? 그것이 열등감이나 정신적 병균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면할 용기를 가지세요. 결핍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놀이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너는 어떻게 노는 어른이 될래?'라는 말은 거의 못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은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노는 데에 보낸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그 '노는 시간'이며, 우리가 어떻게 노느냐가 우리를 규정하기도 한다.
교수님은 늘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꼭 키워드에 대해 먼저 정의를 하고 가신다. 그리고 여기선 놀이를 '생산적인 결과물이 아닌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로 정의하신다. 그 다음엔 보편적인 특징들을 나열한다. 놀이의 경우,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행위이며 / 어떻게 놀아야 한다는 규칙이 없고 / 더 잘 놀기 위해 경쟁하지 않으며 / 혼자 놀아도 재미있고 같이 놀아도 재미있다.
호모 루덴스 : 요한 하위징아가 정의한 개념이며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동시에 그의 저서이기도 하다. 그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호모 사피엔스는 이상을 숭배하던 시절의 정이라 못 박고,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지을 수 있는 특징은 '놀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킨 능력이라 설명하였다. 일례로, 인간은 몸을 회전하면 굉장히 즐거워하는 생물학적 본성 때문에 서커스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예술적인 수준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는 '진지한 놀이(serious play)'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흔히 실리콘밸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빗발치는 자유분방한 회의시간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놀이를 통해 창의와 혁신이 우연처럼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이다.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철학을 공유하지 못한 채, 놀이가 창의와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 가져와서는 혁신을 바란다. 앞서 놀이의 자발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유가 우리 손 안에 있는 사회가 아니라 시스템이 자유를 움켜쥐고 우리를 대하는 사회(신자유주의 사회)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는 자유가 별로 없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 있는 시스템, 그들을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사회가 신자유주의 사회이다. 진정한 자유가 없는 곳에는 놀이도, 창의도, 혁신도 없다.
교수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놀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답을 드릴 능력과 재간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질문을 여러분께 던진 이유는 '나에게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어서입니다. (중략)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일과 놀이를 함께 성찰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로고침

이번 강연의 주제는 '인간의 뇌는 새로고침이 가능한가'이다. 새해를 앞둔 시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역시나 교수님의 접근 방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데, 새로고침이 왜 그토록 어려운가 하는 질문에 대해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새로고침에 대해 어떤 답들을 내놓고 있는지 공유하고 함께 들여다 보려는 마음이라고 하신다.
우선 새해 결심에 대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77%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약 일주일 간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약 19%의 사람들이 2년 간 지킨다고 한다. 근데 그 중에서는 '올해에는 연애해야지' 등의 본의와 크게 연관 없는 목표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약 10% 정도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지키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왜 새해 결심을 지키기는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왜냐면 우리 뇌는 그렇게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새로고침하고 싶다면 결국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하고, 그것의 중추인 뇌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다. 그렇다면 4가지의 서로 다른 메뉴가 주어진다면 어떤 분포를 가질까? 하루에 약 200끼를 먹는 쥐를 통해 실험을 진행해 봤더니, 놀랍게도 25%씩 먹는 게 아닌 취향에 따라 약 52% / 27% / 14% / 7% 정도로 선호 순위에 따라 선택 비율이 절반씩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마치 내 점심시간 같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쥐에게 열 번 내내 한가지 맛의 음식을 준다면 열한 번째에 그 맛의 음식을 먹을 확률은 80%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직관과 반대되는 선택이다. 왜냐면 우리는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다음번에 같은 음식을 먹을 땐 만족감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단하고 행동할 때, 뇌에서는 두 개의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하나는 목표지향 영역(goal-directed system)이고 하나는 습관 뇌 영역(habit system)이다. 목표지향 영역은 내가 지금 이걸 해서 무얼 얻을 수 있는지 그 목표를 생각한 후,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선택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찬 메뉴판을 맞이하게 될텐데, 이때 목표지향 영역이 활발히 활동하고 '내가 지금 뭘 먹어야 가장 맛있는 경험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레스토랑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다음 습관 뇌 영역은 일상적인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으로 목표의 결과값을 높이기보다는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려 애쓰게 된다. 즉 목표지향 영역이 레스토랑이라면 습관 뇌 영역은 늘 먹던 것을 시키는 학교 앞 중국집, 백반집인 것이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선택일수록, 처음 해 보는 과제일수록 목표지향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 근데 이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자꾸 반복되면 이제 더 이상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에너지를 별로 들이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습관 시스템은 아주 최소한의 노력으로 예측 가능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습관이라는 행동 패턴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가볍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뭔가를 생각하고 신경쓴다는 것은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마 실리콘 밸리 CEO들이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도 유사한 맥락일 것이다. ( 참고 아티클 : 아인슈타인과 잡스가 단벌신사였던 이유 )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는 평화롭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요. 반면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버겁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리셋도 어렵습니다.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새로고침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나쁜 습관,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뒤바꿀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있는 곳으로 먼저 여러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새해 결심을 못 지키는 이유, 새해 결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새해 결심을 못 지키는 이유는 내년에도 새해가 오기 때문이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내 삶에서 새해가 더 이상 없어지는 것이다.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그 절박함을 만드는 것이 새로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이다. '메멘토 모리', 늘 죽음을 기억하자.

후회, 그리고 성숙한 삶에 관하여

후회와 실망은 다르다. 실망은 A라는 행동을 했을 때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모든 동물들은 기대와 예측을 하면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들도 실망을 한다. 하지만 후회는 조금 다르다. 후회는 A라는 행동과 B라는 행동 중 A라는 행동을 선택했을 때 결과를 B라는 행동을 선택했을 때 나타났을 결과와 비교하여 그 결과물이 더 작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즉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선택했을 때 벌어질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아주 고등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는 동물은 아직은 영장류까지밖에 없다.
후회 없는 삶은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자기가 선택한 것 외의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며 점점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적절한 태도이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적절한 게 아니다.

미신과 오류

우리가 쉽게 믿는 미신 중 하나인 최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TV에서 최면술사가 최면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최면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최면협회에서는 최면 거는 모습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쓰며 노출 시 자격을 박탈한다. 따라서 TV에서 최면 관련 콘텐츠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모두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갑자기 두니아라는 예능 프로에서 한 유명한 최면술사가 이근 씨에게 최면을 걸다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는 영상이 생각난다.
왜 우리는 삶을 구속하는 비이성적인 믿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을까요? 내 삶은 내가 하기 나름이고, 나의 온전한 의지에 좌우된다는 고귀한 믿음을 왜 우리는 스스로 기꺼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는 걸까요?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삶에서 미신을 놓기 어렵다. 미래라는 통제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그것을 통제하려 억지로 인과관계를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 즉 원인을 분석하려 들지 않고 어떤 신적인 영역인, 실제론 아무런 상관 없는 미신을 갖다붙이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기대는 높고 미래에 대한 통제권이 약할 때 아예 통제권 밖인 요소를 들여 와 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다.
제1종 오류 ( type 1 error ) : 기각해야 할 가설의 채택 ( 아닌 것을 맞다고 하다 ) 제2종 오류 ( type 2 error ) : 채택해야 할 가설의 기각 ( 맞는 것을 아니라 하다 )
둘 중에 어떤 오류가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일까? 늑대가 안 나타났는데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는 건 제1종 오류이다. 이건 그냥 동네 사람들한테 욕을 좀 먹으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동네 사람들이 양치기 소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제2종 오류이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 맞나? ) 즉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인 것은 맞는 것을 아니라고 하는 제2종 오류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제2종 오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제1종 오류를 범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워 진다는 것이다. 미신이 없는데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전대상피질'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할을 한다. 바로 무작위의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인데,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찾아내는 능력, 사막의 모래언덕 사이에서 도마뱀을 찾아내는 능력, 숲속에서 군복입은 군인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곳에서 비롯된다.
만약 전대상피질에 도파민이 부족하면 이러한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즉 패턴이 있는데 발견하지 못할 확률, 제2종 오류를 범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을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대상피질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치면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도파민 상승제 역할을 하는 코카인과 같은 마약을 섭취하는 경우이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다. 반면 불행은 미리 안다면 그 때까지의 시간마저 잠식해 버리며 더 큰 불행이 닥칠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행복은 더 크게 누리고 불행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고 불행을 덜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인 것입니다.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의 태도

위 이야기의 연장선인데,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이다. 회의주의자적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 보며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이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파인만 아저씨도 대표적인 회의주의자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인만 아저씨 영상
무릇 과학적인 사고란 내가 경험한 것, 내 주변 사람이 경험한 것과 같은 일화와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실제로 일어나는 통계를 구별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개별적으로는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지만 개인은 그것을 냉정하게 판단할 능력이 없다. 어떤 일이 실제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그 일이 발생할 만한 개연성을 이해하게 됐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태도, 내가 우연히 나 혼자만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쉽게 믿지 않는 태도, 이것이 과학적인 태도의 출발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것, 다만 이러한 태도가 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되지 않게 할 것.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 의심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기에 말입니다. -칼 세이건,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창의적 발상

창의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동서양의 감정을 읽는 방식에 관하여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하자면,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는 방식이 동서양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주로 입을 보며 감정을 읽고, 동양 사람들은 눈을 보면서 감정을 읽는다는 내용의 연구가 있다. 여기서 정재승 교수님은 동서양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모티콘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캐치하셨는데, 우리도 알다시피 서양 사람들은 눈을 :로 퉁치고 : ) : ( :D 등으로 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을 _로 퉁치고(혹은 없이) ^_^나 ㅠ_ㅠ 등으로 눈을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양 아이들은 입이 없는 헬로키티를 매우 기괴하거나 불완전하다고 느껴 동양권에 비해 헬로 키티가 서양권에서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정재승 교수님은 이렇게 과학적인 논문을 기반으로 생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시는데, 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과 연결하는 경험', 이것이 바로 창의적인 발상의 시초이다.
창의성과 지능의 차이 :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흔히 창의적인 사람은 암기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는 '바둑을 둘 때 7급이 머리를 많이 쓸까 7단이 머리를 많이 쓸까?'라는 예시를 들며 창의적인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 에너지를 확 모아서 사용할뿐,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는 별로 머리를 쓰지 않을 수 있게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기본적인 것들은 훈련을 통해 체화해 놓은 상태임을 이야기한다. 일만 시간의 법칙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이 은유라고 이야기하며, 훌륭한 은유일 수록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즉 창의성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전에 한 이야기를 21세기의 신경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증명해 낸다.
창의성은 전전두엽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평소 연결되지 않는,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끼리 신호를 주고받고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남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색다른 분야에서 문제를 접근할 때 창의적인 발상은 시작한다. 나도 오늘 유튜브 채널 '티키틱'의 뮤지컬 커버 메이킹 필름을 보며 디자인 작업물에 영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공연예술전공 수업을 들은 것은 나의 피아노나 디자인에 한 단계 성장을 불러와 주었다. 예술이나 요리처럼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통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많이 경험해 보고 많이 느껴보는 것은 참 중요하다.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서 흉내 내세요.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흉내 내세요. 똑같이 따라 하진 마시고 꾸준히 변형하세요.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의 출발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특정 일자리가 생기고 없어지는 방식의 변화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가 아니라, 업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각자 업에 대해 가진 내면의 철학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인공지능처럼 일한다는 게 무엇일까? 책에서는 일차원적으로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자들은 사라질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자의 본령을 '취재'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중요 어젠다를 세팅하고, 현장에 가서 취재하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걸 정리해 '기사'라는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믿는 기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각자의 직업에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닌 업무의 지형도이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다.
이 챕터를 마무리하며 애자일 컨설팅 대표님께서 정의하신 인공지능에게 유리한 조건, 그리고 인간에게 유리한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 목표가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정해져있고 정적이며 ·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행동과 선택의 종류가 유한하게 정해져 있고 · 매 순간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알 수 있고 · 주로 닫힌 시스템 속에서 일하며 · 과거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구조화된 기록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 목표가 불분명하고 주관적이며 계속해서 변하며 ·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행동과 선택의 종류가 무한하게 정해져 있고 · 내가 목표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알 수 없고 · 주로 개방된 시스템, 즉 예상치 못한 요인의 개입이 잦고 · 과거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구조화된 기록이 적은 일을 찾아야 한다.

아날로그의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