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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회고

2021년은 취미의 해이다. 작년에 시작한 운동과, 성인 이후 내 삶의 팔 할이었던 피아노를 각각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고,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며 결실을 맺었다. 또 새롭게 시작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사진이 내 삶에 꽤나 깊숙히 들어왔다.
1월 - 노션
2020년 12월에 좋은 결과를 얻었던 노션 페이지를 다듬고 고도화했다. 작업, 읽은 글들, 음악 등 각각의 카테고리를 정리하며 ‘나는 왜 이런 일을 해왔던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내린 결론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콜아웃 블록으로 삽입하였는데, 내 노션 페이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감사하게도 이때 구축해 놓은 페이지는 oopy 사이트의 메인에 노출되고, 교육자료로도 활용되었으며, 도서에 삽입되는 등 한 해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준 듯하다.
2월 - 스터디
직장 동료 정인 님이 업무에 어려움을 표했다. 내가 뭔가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공부가 필요한 레벨이었다. 그래서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정인 님과 매일 출근 1시간 전에 만나 마케팅 · 브랜딩 · 비즈니스를 공부했다. 해외 아티클을 번역하기도 하고, 동영상 강의도 찾아보며 꽤나 열정적으로 임했던 시기이다. 외에도 작년에 함께 리메인에서 UX/UI를 배웠던 분들과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 매주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3월 - 독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큰 맘 먹고 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를 다 읽었다. 3월 중순에는 독서모임 친구들에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선물받았다. 차라투스트라를 읽기에 앞서 책을 선물해준 하경이와 함께 니체의 철학에 대해 공부를 했고,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도 나누었다.
3월 7일에 아이패드를 샀는데, 덕분에 마음에 드는 문장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으며 책을 볼 수 있었다. 이때의 독서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에, 이 시기의 독서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4월 - 오퍼와 서류준비
지극히 평범헀던 어느날 내 노션 페이지를 인상깊게 본 헤드헌터 한 분으로부터 포지션 제안 메일을 받는다. 1분기를 열심히 보냈던 터라, 열정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더구나 제안을 받은 회사는 업계 1위의 회사로 이곳에서라면 내 커리어를 꽃피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컸었다. 그렇게 그간의 작업들을 정리하여 포트폴리오와 서류를 만들고 1차에 합격헀다. 다음은 과제 전형이었고, 주말을 쏟아 과제를 제출했다. 하지만 달이 바뀌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5월 - 실패와 무너짐
과제를 제출하고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했고 이때 다른 사람을 먼저 채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한 누나의 친구가 큰 IT 기업의 인사과에 있어, 그 회사에도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꽤나 마음 쓰린 피드백과 함께 거절의 쓴맛을 봐야 했다. 이때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허무함이 한 데 뒤섞여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무너졌다.
6월 - 글쓰기
그럼에도 무너져 내린 정신을 다시 정리해서 쌓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글쓰기의 공이 컸다. 글쓰기는 내가 처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덕분에 알게모르게 나를 조여왔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또 어머니의 글에서 불확실성과 불행을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글쓰기 모임 ‘업글’에서 매주 던진 질문들 덕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업글은 내게 고맙고 의미가 큰 존재이다.
살짝 번외로 성준이 형과 함께 해오던 공모전 헌팅사업 중 ‘음쓰맨을 화나게 해선 안 돼’ 영상도 요맘때 촬영했는데, 스토리와 연출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캠페인 영상이다.
7월 - 사진
6월 말에 카메라를 샀고, 7월에 야무지게 찍으면서 다녔다. 하림이와 상수에서 데이트하면서도 찍고, 은지 님이 맨투맨 협찬 받았을 때도 100장 가까이 찍어드리고, 군대 동기들과 여행에 가서도 막 찍고, 성준이 형이 머물던 서촌 에어비엔비에 가서도 새벽까지 찍었다. 가방에 카메라를 넣어갖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사진도 사진인데, 현장의 분위기를 재현하거나 각색할 수 있는 라이트룸 보정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사진과 보정의 매력에 푹 빠져 보낸 한 달이었다.
참, 나는 사진을 찍는 과정만큼 사진을 지우는 과정도 좋아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지울 때마다 남는 사진들이 소중해지는 듯한 그 느낌이 괜히 좋았다.
8월 - 식단
6월에 예정되었던 바디프로필 촬영이 계속해서 한 달씩 밀리며 9월 초로 최종 확정되었다. 한 달씩 미뤄진 덕분에 나도 운동과 식단 모두 조금씩 꾸준히 강도를 올려가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은 이 여정의 피크였다. 따로 식단에 관한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다 보니, 먹던 음식들이 질려갈 때 즈음에 새로운 음식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두부면이었는데, 식감도 마치 면같아 꽤 신나기도 했고, 밥의 포지션이면서 단백질이 제법 들어있어 발견한 이후로 자주 먹게 되었다. 나중에 탄수화물을 줄일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연어는 18년도에 페스코 채식을 할 때도, 이번에도 나의 구원자였다.
9월 - 바디프로필 · 바이시클다이어리
컷팅을 하면서 근육도 많이 빠졌다. 어느정도냐면 처음 헬스장에 가기 전보다 근육량이 줄었다. 1년 동안 쌓아올린 근육량이었는데, 막판에 가서는 근육이 하루에 1kg씩 빠지니 허무함이 컸다. 하지만 이때 몸이 가벼워진 덕분에 턱걸이를 17개나 할 수 있었는데, 이때 하나의 수치에 너무 빠질 필요는 없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값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그 과정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9월 초에 감독님 그리고 소희 님과 바디프로필 촬영을 마쳤고,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추석 연휴의 둘째 날, 잠수교에 러닝 약속이 있었다. 옷장에는 19년도에 자전거 여행을 위해 샀던 헬멧이 방치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한강을 달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헬멧을 쓰고 자전거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함께 뛰기로 한 형준 님이 사진을 좋아했던 터라 카메라도 챙겼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바이시클 다이어리 시즌 투를 만들게 되었다. 첫 번째 바이시클 다이어리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과 인스타에 올린 글로 구성되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구색을 갖춰보고 싶었다. 그렇게 사진 17장을 엽서의 형태로 잘라 로고와 글과 함께 인쇄했다. 내 입맛대로 로고를 디자인하는 과정도 재밌었고, 사진과 어울리는 색을 찾아 로고의 색을 입힐 땐 마치 편집디자이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엽서를 친구들에게 팔았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사주고 또 좋아해줘서 감사했던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자전거 타기, 사진 찍기, 디자인하기, 글 쓰기, 팔기(?)와 같은 것들이 녹아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해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10월 - 이직 2차 시도
처음 대현이에게 어라운드 잡지를 선물받았을 때, 매 장마다 삽입된 따뜻한 색감의 사진과 이름 모를 세리프체로 써져있는 제목, 그리고 글자와 배경사진의 색 조합에 매료되어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렀다. 무엇보다 책의 맨 뒷장에 적혀 있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의 시간은 조금 천천히 흐른다’는 말에서 글에 취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어라운드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어라운드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며 나에게 이 잡지를 아느냐 물어보셨다. 나는 신이 나 당연히 안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어라운드에 대한 호감도가 급속도로 높아져 가던 중 어라운드의 채용 공고가 떴다. 그것도 평소 관심있던 브랜드 기획자 직군. 나는 속으로 이건 운명이라 생각하며 지원서를 써내려갔다. 디자인 직군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내가 처음 진하게 감동받았던 어라운드 스타일로 지원서를 꾸몄다. 지원서 양식에는 나의 취향과 같이 삶에 관해 묻는 질문들도 있어, 자연스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렇게 서류를 합격했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살면서 본 첫 번째 면접이었는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 가지 못했던 게 패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주어지는 일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가며 해오기만 했지, 막상 뚜렷하게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단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11월 - 경기피아노페스티벌 · 이직 3차 시도
11월에는 알았다. 그렇게 마케팅과 디자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포지션을 딱 정하고, 이에 맞춰 회사들을 쭉 정리하고 마스터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포트폴리오 덕분에 지금의 회사를 만나게 되었다. 대표님께서는 내가 일할 떄 중요하게 생각해오던 가치와 프로젝트 이면에 깔려있는 고민들을 알아봐 주셨다. 그렇게 그동안 겪어왔던 실패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멋진 꿈을 꾸는 스타트업에 입사하였다.
경기피아노페스티벌은 내 피아노 커리어에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하수의 틈새로 들어갈 때 눈 앞에 하나 둘씩 펼쳐지던 객석, 그리고 내가 연주한 음이 반대편 벽에 반사되어 다시 내 귀로 돌아오던 그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20년 1월 이후 거의 2년 만의 공연이었다.
12월 - 방학
11월 30일, 스무살 때부터 함께해왔던 파파타와의 인연을 정리하고 무직 상태가 되었다. 방도 싹 치우고 책도 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바빠서 만나기 어려웠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잘 안 쓰는 물건들은 팔고, 판 만큼 새로운 물건들로 방을 채웠다. 그렇게 좀 더 나 다워진 공간에서 나 답게 시간을 쓰며 보낸 한 달이었다. 참, 핸드폰도 바꿨다. 안드로이드 OS를 10년 넘게 썼는데, 드디어 아이폰 유저가 되었다. 12월 중순에 입사가 확정되었고, 그때부터 정말 마음 편히 하루하루를 보낸 듯하다. 내 삶에 이런 시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최고의 리프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