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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주 차 : IR과 양양 버스킹 이후

# 일
IR덱 작업이 거의 끝을 향해간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평소 존경하는 분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 디자인 역량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실장님의 피드백이었다. 디자인과 비즈니스 모두 업을 함에 있어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이기에, 그리고 매번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하는 두 분야이기 때문에 언급해 주심에 감사했다.
두 번째는 주어진 자료를 해체하고, 공부하여 본인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결과물을 만들어오는 것은 엄청난 재능이라는 신대표님의 피드백이었다. 언제나 그러하시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위 피드백을 말씀해주셨는데, 참 감사했다. 2018년부터 주어진 정보를 재해석하고, 상대방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형태로 재조합하는 의식적인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이 결과물을 최대한 오차 없이 전달하기 위해 문자 언어와 시각 언어의 활용 능력을 키우려 노력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문장이 더 크게 와닿았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살아왔는지, 나아가 시장에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음악
전날까지 이어졌던 태풍의 영향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무대도 작은 가설 무대였으며 장비 세팅도 단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30분 정도 앞두자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부터 계속 다르게 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곡을 완성도 있게 편곡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동일한 코드 진행 내에서 즉흥적으로 화음을 구성하여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쳐본 범위에서 늘 레파토리가 맴돌았다. 그런데 하필 이번 공연을 앞두고 잔잔하다 → 고조되고 → 터지는 분위기를 조성할 때 치는 방법이 매번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인지해버린 것이다. 아르페지오를 할 때 짚고 가는 건반들과 화음들, 왼손과 오른손의 패턴, 스케일에서 벗어난 코드를 칠 때의 진행들… 이렇게 매번 나 편한대로 비슷하게 치는 것이, 그리고 충분한 고민 없이 곡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물론 충분한 고민 없이 이 정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수련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피카소가 15분만에 그림을 그리고는, 이 그림을 15분만에 그리기 위해서 40년이 걸렸다고 이야기한 일화를 좋아한다.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고, 여기서 안주하기에는 더 나아질 수 있는 지점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것이 지금까지 내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과 소모임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다가, 한 개의 음을 치더라도 더 잘 누르고 예쁜 소리가 났으면 하는 마음에 2학년 종강날에 무작정 클래식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고, 21년 11월에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할 때까지 꾸준히 피아노를 쳤다. 22년부터는 잠시 클래식 피아노와 떨어지고 다시 밴드와 반주의 세계로 들아왔지만, 아마 이번 인지를 바탕으로 또 한 차례의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래도 이번 공연을 통해 두 가지를 극복했다. 첫 번째가 노래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인지, 강릉에서 한번 큰 실패를 경험해서인지, 아니면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어서인지.. Close to you를 잘 마무리했다. 이제는 더 이상 긴장해서 폭주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마이크와 조금 친해지는 연습은 더 해야할 것 같다. 아직 입이 마이크에 자석처럼 끌려가서 턱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희안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주에 이태원 공연만 잘 해낸다면! 정말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디토다. 애증의 디토. 디토를 계속 편하게 칠 수 없었던 것이 위에 내가 느낀 한계점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한데 듣는 데에 있어 코드 진행이 익숙한 것에 비해 막상 치려면 내가 생각했던 코드가 아닌 경우가 정말 많았다.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해결이 되는 문제인데, 반주 패턴도 익숙하지가 않아 손에 잘 붙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 그래도 7월 한 달 동안 메모어 아침공부클럽 시간에 꼬박꼬박 연습을 했고, 악보를 통째로 외우지는 못했지만 자주 틀리는 마디와 곡 전체의 코드 진행, 그리고 곡 안의 다이나믹은 나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완전히 생각을 비우고 연주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까먹을 것이다, 틀릴 것이다와 같은 불안과 걱정으로부터는 한결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