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7 W2 | 45주 차
2024-11-04 (월) ~ 2024-11-10 (일)
01. 관계에 관한 생각
잘 맞지 않는 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대화를 나눈 순간부터 잘 맞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일을 같이 하면 할수록 그 불길했던 예감은 점점 현실이 되어,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럼에도 이 간극을 좁혀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고 이런저런 가설들을 테스트해보았다. 이렇게 이야기하시지 말라고도 얘기해보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통 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 PT를 준비하기도 하고, 그냥 나에 대한 신뢰의 문제인가 싶어서 산출물의 퀄리티를 확 높여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뭔가 근본적인 게 해결되지는 않는 느낌이었고, 상황은 계속 절망적으로 흘러갔다. 나중에는 그냥 맞는 말을 해도 짜증부터 나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주 일요일날 나의 마지막 가설이 무너졌고 결국 미래가 보이지 않자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그렇게 화요일 회의를 끝마치고 대화를 신청했고, 그분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게 스트레스고,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야기를 하는데, 오히려 그분은 그동안 나의 소통 방식에서 상처를 적지 않게 받았다고 말씀을 하셨다. 나도 대화가 시작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말이 사납게 나가는 걸 알고는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문득 김창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말에 대한 판단은 청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왜냐하면 그 판단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베어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저 사람은 안 좋게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로 아무리 비난을 해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자는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저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 사람과의 소통 방식 개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관계의 회복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초점을 서로 쌓여있던 오해와 불편한 감정들을 풀어가는 쪽으로 옮겨갔고, 이후의 대화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 이야기를 잘 끝마쳤다. 이젠 더 이상 스트레스도 없고, 소통도 훨씬 편하게 한다. 애초에 내가 세우고 실행했던 가설들은 말이 안 되었던 것이다. 타인과의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그리고 관계에 관해 창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한 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다.